상면 발효와 하면 발효 (Studies on Fermentation)

Posted by 김밖사
2014. 6. 25. 14:00 맥주 상식

본 글은 Louis Pasteur (루이스 파스퇴르) 가 1876년에 출간한 <Études sur la Bière> 의 영문 번역서인 <Studies on Fermentation: The Diseases of Beer, Their Causes, and the Means of Preventing Them> (발효에 대한 연구: 맥주 변질의 발생 이유와 예방법) 을 직접 읽고 참고할 만한 부분을 따로 간추린 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150년 가까이 된 정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시대의 맥주 제조법이나 맥주 산업과는 다른 부분이 많을 수 있습니다. 맥주에 대한 역사나 상식을 얻는 수준에서 가볍게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맥주와 와인의 차이
가장 역사가 오래된 술을 두 개 꼽으라면 역시 맥주와 와인일 것이다. 와인은 옛날부터 고급스러운 술의 이미지를 가져왔으며 실제로 귀족을 중심으로 소비되었다. 이에 반해 맥주는 값이 싼 곡물을 이용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서민들의 음료로 전해져왔다. 실제로 노동의 대가나 세금 등을 맥주로 받는 등 어느 정도는 화폐의 역할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 비롯해 여러 차이점이 존재하겠지만 이 글에서 집중하는 맥주와 와인의 차이는 단연 ‘발효의 차이’ 이다. 와인과 맥주의 제조에서 발효법 상 가장 큰 차이는 '효모의 첨가’ 라고 할 수 있다. 발효 과정에 효모를 직접 주입 (injection) 하는 절차는 와인 제조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발효 측면에서 효모를 일부러 주입하는 것은 발효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사실 효모 주입을 통한 ‘인공적인 발효’ 보다는 와인과 같이 오랜 시간에 걸친 자연적 발효 (spontaneous fermentation) 쪽이 품질 측면에서 우월한 결과물을 보장한다는 것은 옛날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왜 유독 맥주 제조에서만 효모 주입을 통한 빠른 발효를 추구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맥즙 (wort) 의 변질 (deterioration)’ 을 막기 위함이다.  와인과는 다르게 맥주는 보리를 중심으로 값싸고 다양한 곡물을 재료로 하여 빚어진다. 따라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변질되어버려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했다. 이는 발효 과정에서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였고, 맥주 제조자들은 최대한 빠른 발효를 원했기 때문에 효모를 주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이 쓰여지기 이전 시대의 맥주는 제조부터 유통 및 소비까지 최대 8일을 넘지 않도록 관리되었다고 한다. 당시 냉장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변질되기 쉬운 맥즙의 성격이 가장 큰 이유라고 알려진다.

빠른 맥주의 발효 (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mikeylemoi/10638916904)


상면 발효와 하면 발효
위에서 언급한 짧은 유통기간을 가지는 당시 맥주는 모두 ‘상면 발효 (high fermentation)’ 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여기서의 ‘high’ 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효모가 발효하는 위치가 맥주의 ‘윗 부분’ 에서 이루어진다는 상면의 의미와 비교적 ‘높은 온도’ 에서 발효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상면 발효 맥주는 약 20도 정도의 온도에서 된다고 한다. 미생물은 따뜻할수록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 따라서 상면 발효의 경우 상당히 빠른 발효 속도를 자랑하는데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변질의 위험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8일이라는 짧은 유통기간이 당시 맥주 변질의 리스크가 상당히 컸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시 맥주 제조자들은 평균 약 20퍼센트의 맥주가 마실 수 없게 되어버려 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상면 발효에 주로 사용되는 효모 (그림 출처: 책)


냉장 기술의 발전과 함께 독일 및 체코에서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 ‘하면 발효 (low fermentation)’ 이다. 상면 발효와는 반대로 효모가 맥주의 ‘아랫 부분’ 에서 발효하며 10도 이하의 ‘낮은 온도’ 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하면 발효 맥주는 영국을 중심으로 제조되어 온 상면 발효 맥주들에 비해 상당히 밝은 색을 자랑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밝은 색의 하면 발효 맥주를 흔히 ‘하얀 맥주 (white beer)’ 라고 부르곤 했으며 프랑스 사람들은 그냥 ‘독일 맥주 (German beer)’ 라고 편하게 불렀다고 한다. 최초의 하면 발효 맥주들은 냉장 기술이 상당히 시원찮던 시기에 추운 겨울에 만드는 겨울용 맥주였다고 한다. 하지만 냉장 기술이 점점 발달하면서 사계절 내내 만들고 유통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점점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면 발효에 주로 사용되는 효모 (그림 출처: 책)


하면 발효의 장점
하면 발효 맥주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소비자들의 느낌 상 색이 밝고 독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면 발효는 맥주 제조자들에게도 상당한 이득을 가져다 주었는데, 이는 맥주의 변질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맥주 유통 기간도 점차 늘어나게 되고 이러한 변화가 맥주 제조자들에게 금전적인 이득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유럽 전반에 걸쳐 하면 발효 맥주가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Asahi 맥주 공장 (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potaufeu/624795542/)


상면 발효 맥주의 종주국인 영국은 맥주의 변질 방지에 대해서 여러모로 노력했었다. 홉의 방부 역할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인도로 보내는 맥주에 홉을 잔뜩 집어넣은 India Pale Ale (IPA) 와 같은 새로운 장르의 맥주를 개발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홉을 잔뜩 사용해서 맥주를 만드는 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하면 발효 맥주가 가지는 이점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당시 영국은 이미 상면 발효 맥주에 대한 인프라가 충분히 갖추어 진 상태였고, 묘한 자존심도 작용을 하면서 하면 발효 맥주가 가장 늦게 도입된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결국 영국에서도 하면 발효 맥주가 본격적으로 생산 및 소비되기 시작하는데, 1860년에서 1870년의 10년 사이에 상면 발효 맥주를 전문적으로 하던 펍의 수가 절반 이상이 줄었다고 한다.

요즘 흔한 펍의 모습 (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bensutherland/5277024586/)


당시 사람들은 보다 이익을 주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을 뿐 특별한 과학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알 턱이 없었다. 파스퇴르는 이 책에서 간단한 관찰을 통해 하면 발효 맥주의 장점을 증명하고 있다. 현미경으로 10도 이하의 환경에서 발효 중인 맥주를 관찰해 본 결과 변질을 유발하는 효모 (diseased ferments) 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즉, 하면 발효 맥주가 변질에 더 안전하고 긴 유통 기간을 가질 수 있는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발효 시 낮은 온도가 세균의 번식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또한 낮은 온도는 효모 활동의 속도 자체를 늦춰 변질의 리스트를 낮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어지는 포스팅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루이스 파스퇴르 (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nataliemaynor/249784970/)


에일과 라거, 우리나라는?
우리 시대에 상면 발효 맥주는 흔히 'Ale (에일)’, 하면 발효 맥주는 ‘Lager (라거)’ 라고 불린다. 모든 맥주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에일은 일반적으로 라거에 비해 묵직하며 풍부한 향과 맛을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라거는 맛과 향은 조금 약하지만 가벼운 바디감과 청량감을 가지는 것으로 차이점을 묘사할 수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맥주는 대부분이 라거 맥주이다. 라거는 하면 발효를 위한 온도 제어만 제대로 된다고 하면 비교적 일정한 맛을 낼 수 있고 유통이 용이하다. 따라서 공장에서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현재의 맥주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위 ‘대기업 맥주’ 라고 부르는 몇 개의 라거 맥주들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대량생산과 원가절감을 위해 옥수수, 쌀, 전분과 같은 부산물이 첨가되기도 하고 하이 그라비티 공법 (high gravity, 물타기) 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이 한편으로는 맥주의 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오게 되었다. 희망적인 것은 최근 유럽, 미국 등 세계의 다양한 맥주가 국내에 소개되고 소비자들이 점점 ‘맥주 맛’ 을 알게 되면서 맛있는 국산 맥주에 대한 수요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소규모 펍을 중심으로 자체 제작 및 판매되던 수제 맥주 (craft beer) 도 최근 주세법의 개정을 통해 외부 유통이 가능해졌으며 흐름에 발맞춰 국내 맥주 기업들도 에일을 하나 둘 출시하고 있다. 10년, 20년 후에는 더 다양하고 개성있는 ‘국산 맥주’ 를 쉽게 만나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대량생산되는 국산 맥주들 (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ekkun/44136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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